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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후기의 주택을 판별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. 하나는 공간구성에서
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으면서 비교적 개방적인 형태-ㅁ자가 아닌 ㄱ자
형태를 하고 있으며 18,9세기에 지어졌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고, 두 번째로는 주택에 사용된 부재-기둥, 도리, 보-가 약해 보이거나 덧덴 자국이 있고 보나 도리 중 휜
것이 많으면 대체로 조선 후기의 주택이다. |
18세기 후반인 1784년에 지어진 '김동수 가옥'의 경우도 위의 판단법에
딱 들어 맞는다. 사랑채와 안채가 안 행랑채와 담장으로 인하여 강한 내외를 한 흔적이 보이고, 사랑채나 안채의 기둥부제가 전 시대
가옥들에 비해 빈약하며 행랑채 등에는 창방을 휜 부재로 쓴 경우가 보인다. 부재가 가냘퍼서 인지는 몰라도 사랑채나 안채의 모습이 썩 잘생겨
보이지는 않는다. 그러나 안채의 평면 구성은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배치를 보이고 있다.
오른쪽의 도면은
전라북도 순창에 있는 중류가옥의 안채이다. 도장을 가운데 두고 시어머니의 큰방과 큰 며느리의 작은방이 좌우로 있고 도장으로 통하는 문을 가지고
있는데, 큰방에서 도장으로 문이 나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큰며느리의 작은 방에서도 문이 나 있는 것이 특이하다. 이것은 시어머니가
돌아가시기 전에는 집안의 권리를 맏며느리에게 넘겨주지 않는 호남지역 가정의 특징이 가옥에서도 잘 나타난 예인데, 집안에 행사에 대한 권한이 없는
큰며느리가 불만을 갖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권한을 시어머니와 큰며느리가 공유하는 모습이 가옥의 평면에도 반영이 된 것이다.
김동수
가옥의 안채가 좌우 대칭으로 두 개의 부엌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. 아마도 이 집을 처음 지을 당시 맏며느리의 나이가 꽤나
많아서 집에서의 경제권이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. 하지만 이 가옥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공간의 구성에 있다. 마당의 크기와 위치, 그리고
대문간에서 안채까지 흐르는 동선의 관계가 뛰어난데, 그 중에서도 문간마당과 안마당은 더욱 아름답다. 행랑채와 담장으로 ㅁ자형을 구성하는
문간마당은 마당의 크기, 사랑채로 이어지는 중문의 위치, 식재 그리고 담장 너머로 머리가 살짝 보이는 안 행랑채 등 어느 곳 하나 허술한 곳이
없다.
안마당은 ㄷ자형의 안채 내부 마당과 안 행랑채 사이의 긴 가로마당이 만나서 아늑함과 긴 마당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고,
좌측 안사랑채 사이의 담장은 두 공간의 관계를 잘 정리하고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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